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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독감(AI)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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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경우 2003년 이후 거의 매년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조류독감(鳥類毒感)”은 아주 익숙한 용어가 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의 정식 명칭은 “조류인플루엔자(Avian Influenza, AI)”이고, 국내 닭, 오리 관련업계에서는 조류독감이란 용어 대신에 조류인플루엔자라는 용어를 사용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형편이다. “독감”이란 표현이 사람들에게 걸리는 독감을 연상시키고 불안감을 키워 닭과 오리고기의 소비를 기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인플루엔자(Influenza)”란 바이러스에 의해 일어나는 호흡기 감염성 전염병을 의미하며, AI는 조류에서 발생하는 인플루엔자를 말한다.
AI는 1900년대 초에 이탈리아에서 처음 보고되었으며, 1930년대 이후 발생이 없다가 1983년 유럽에서 재발생한 후 현재까지 매년 전세계적으로 발생되고 있다. 주로 닭, 칠면조 등 가금류(家禽類)에 발생하여 많은 피해를 입히며, 병원성(病原性)에 따라 고(高)병원성, 약(弱)병원성, 비(非)병원성 등 3종류로 구분한다. 또는 비병원성을 제외하고 고병원성과 저(低)병원성의 2종류로 구분하기도 한다. 이 중 고병원성 AI는 폐사율이 100%에 이르고 전염성이 높기 때문에 국제수역사무국(OIE)에서 A급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제1종 가축전염병으로 분류하고 있다.
AI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조류의 콧물, 호흡기 분비물, 배설물 등에 접촉한 조류들이 다시 감염되는 형태로 전파된다. 특히 바이러스에 오염된 배설물에서 입을 통하여 감염되는 경우가 많다. AI 바이러스는 가금류의 분변 속에서 35일 이상 생존이 가능하며, 오염된 분변 1g이면 약 100만 마리의 닭을 감염시킬 수도 있다. 가금류 사육 농장 내 또는 농장 간에는 주로 오염된 먼지, 물, 알의 겉에 묻은 분변, 사람의 의복이나 신발, 차량 등에 의해 전파되며, 공기를 통하여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지는 않는다. 철새들도 AI 전파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철새들은 AI 바이러스에 감염되어도 증상이 약하거나 없지만 닭이나 오리 같은 가금류는 저항력이 상대적으로 낮아 고병원성을 보인다.
AI의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virus)”는 독자적으로는 살아갈 수 없으나, 다른 생물의 세포 속에서는 증식할 수 있는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선에 있는 생명체이다. 바이러스는 생존에 필요한 물질로서 자신의 유전정보를 간직한 핵산( DNA 또는 RNA )과 소수의 단백질만을 가지고 있으며, 그 밖의 모든 것은 자신이 기생하고 있는 살아있는 세포에 의존한다. 이처럼 바이러스가 증식하는 터전이 되는 살아있는 세포를 “숙주세포(宿主細胞)”라고 한다. 바이러스는 숙주세포를 먹이로 증식하게 되므로, 바이러스가 증식하게 되면 숙주세포는 파괴되고 만다. 결국 숙주세포의 몸통이 되는 사람이나 조류 등 생물에 이상 증세를 나타내게 되며, 이러한 이상 증세가 바로 바이러스성 인플루엔자인 것이다.
바이러스는 그 종류가 수없이 많으며, 번식률이 높고, 돌연변이가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진화의 속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어떤 바이러스는 인류가 1만년 동안 진화해 온 것을 하루 만에 이룰 수도 있다고 한다. 바이러스의 이런 특징 때문에 인류가 아무리 항바이러스성 약품을 개발하여도 바이러스성 질환을 뿌리뽑지 못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정복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다행히 인체도 이와 같은 바이러스의 침입에 대항하기 위하여 면역체계를 강화하는 쪽으로 진화하여 왔으며, 그 결과 몇몇 특별한 바이러스 외에는 인체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인체의 면역체계로 방어할 수 없는 신종 바이러스가 나타난다면 언제든지 새로운 질병이 발생할 수 있다.
생물의 세포는 자기 방어를 위하여 필요한 물질만 드나들 수 있도록 세포벽에서 선택적 투과가 이루어진다. 이 선택적 투과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것을 “수용체(受容體, accepter)”라고 하며, 흔히 자물쇠로 비유한다. 바이러스는 숙주세포의 수용체를 열 수 있는 열쇠가 있어야만 세포 안으로 침입할 수 있다. 바이러스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숙주세포에 다른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자신의 생존에도 나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한 종류의 세포에는 한 종류의 바이러스”라는 원칙이 적용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한 종류의 바이러스가 가지고 있는 열쇠로는 한 종류의 자물쇠(수용체)밖에 열 수 없으며, 이것이 AI가 인체에 감염되기 어려운 이유이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A, B, C형으로 구분하며, 이 중 A형은 모든 동물이 숙주(host)가 될 수 있으나, B형과 C형은 사람만이 유일한 숙주이다. C형은 변이도 잘 일어나지 않고 사람에게 이미 면역체계가 갖추어져 있어 감염되어도 발병되는 일이 거의 없다. A형과 B형이 인체에 전염병을 일으킬 우려가 있고, 특히 A형이 변이도 심하고 주기적으로 대유행을 일으켜 위험하다고 알려져 있다. A형 바이러스의 표면에는 H혈청형(hemagglutinin)과 N혈청형(neuraminidase)이라는 두 가지 단백질이 있으며, H는 16종이 있고 N에는 9종이 있으므로, 이론상으로는 두 가지 단백질의 조합( 16 x 9 )에 따라 144종류의 A형 바이러스가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같은 형의 바이러스 중에서도 단백질의 일부분만이 차이가 나는 변종이 존재하므로, 실제로는 무수히 많은 A형 바이러스가 존재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바이러스는 종류에 따라 기생하는 숙주가 다른데, 사람에게는 H1, H2, H3, N1, N2 등이 감염을 일으키고, 조류에게는 H5, H7, H9 등이 관련이 있으며, 생물종(種) 간에는 벽이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AI 바이러스는 사람에게 감염되기 어렵다. AI 바이러스 중 지금까지 알려진 사람에게 감염되는 타입은 H5N1, H7N7, H9N2 등이 있다. 이 중 1997년 홍콩에서 처음 발견하였으며, 2003년 겨울부터 아시아 지역에서 유행하고 있는 AI 바이러스는 H5N1 타입이다. 2003년 네덜란드에서 수의사 1명이 AI에 감염되어 숨졌는데 H7N7 바이러스가 원인이었다. 1999년 홍콩에서 발생한 감염자에게서는 H9N2 바이러스가 검출되었다.
그 동안 AI는 조류 사이에만 전염된다고 생각하여 왔으나, 1997년 홍콩에서 18명이 AI에 감염되고 그 중 6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세계적인 주목을 끌게 되었다. 그 후 매년 AI 감염에 의한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2006년 11월 현재 세계적으로 10개국에서 258명이 감염되어 그 중 153명이 사망하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AI에 감염된 사람들은 모두 양계업자나 도살장 종사자 등과 같이 가금류와 밀접한 접촉을 하여 AI 바이러스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사람들이었고, 가금류를 먹어서 감염된 사례는 없으며, 사람에서 사람에게 전염된 경우도 없다. 사망자는 베트남이 93명으로 가장 많고 인도네시아, 태국, 중국 등이 그 뒤를 따른다. 세계보건기구는 이들 지역이 전통적으로 가금류와 같은 생활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 피해가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아직 AI 감염에 의한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가금류와 밀접한 접촉을 하는 사람에게만 AI 감염이 발생하였으나, 돌연변이를 잘 일으키는 바이러스의 특징 때문에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다. 이들이 우려하는 것은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염되는 변종 AI 바이러스의 출현이며, 이 경우 2003년 중국 등에서 8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스(SARS)보다도 더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이런 가능성에 대해 경계하여야 된다고 권고하고 있다. AI 중 특히 H5N1 바이러스는 변이가 매우 빠를 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에게 쉽게 전이되는 특징이 있다. 같은 H5N1 바이러스라고 해도 표면에 있는 돌기의 단백질 구성에 따라 256 가지 변종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이들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백신의 개발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같은 2004년에 발생된 H5N1 바이러스라도 우리나라에서는 감염자가 없었으나, 베트남에서는 사망자가 나오는 등 변종에 따라 전염성에 차이가 나타난다.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염되는 변종 AI 바이러스가 출현하기 위하여는 사람의 몸 속에 들어와 돌연변이를 일으켜야 하는데 그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예를 들어, 사람 독감( 일반적인 독감 )에 걸린 사람이 AI 바이러스에도 함께 감염되어 두 바이러스의 유전물질이 섞여 새로운 재조합 바이러스가 생기는 경우인데, 이것은 아무리 바이러스라고 하여도 쉬운 일은 아니며, 한 사람이 두 종류의 바이러스에 동시에 감염될 확률도 매우 낮다. AI는 원래 조류에게만 감염되는 것으로, 사람에게 감염되는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일이며, 감염이 되더라도 인체의 면역기능 때문에 모두 발병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가금류와 밀접한 접촉을 하는 사람에게만 발병된 사례들을 보아도 소량의 AI 바이러스 감염으로는 발병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2003년 우리나라에서도 4명이 H5N1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으나 아무도 발병하지는 않았다. 고병원성(高病原性) AI란 조류에게 치명적이지 사람에게도 고병원성인 것은 아니다.
사람이 AI에 감염되면 약 1주일의 잠복기를 거쳐 일반적인 감기나 독감에 걸렸을 때와 비슷하게 38℃ 이상의 열이 나며, 기침이 나고, 목이 아프거나 호흡이 곤란한 증상 등을 보이게 된다. 그러나, AI는 접촉에 의해 전염되는 질병이므로 증상이 나타나기 전 7일 이내에 닭이나 오리와 같은 가금류와 접촉하지 않았다면 AI를 의심하기 보다는 감기나 독감일 가능성이 높다. AI 감염을 예방하기 위하여는 가금류와의 접촉을 피하고, 손을 자주 씻어야 한다. AI 바이러스는 75℃ 이상에서 5분 이상 가열하면 죽기 때문에 닭이나 오리 등을 충분히 익혀서 먹는다면 AI 바이러스에 감염될 우려는 없다. AI는 보통 조류의 배설물을 통해 인체에 감염되는데, 배설물과 접촉할 기회가 적은 일반인은 감염 확률이 더욱 낮다. 따라서, 인체 감염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인플루엔자 연구책임자인 클라우스 스퇴르(Klaus Stohr) 박사는 아시아 10개국에서 AI가 인체로 확산되고 있지만 아직은 차단할 기회가 있다고 하였다. 그는 또한 AI는 아직 사람의 전염병이 아니라 매우 드문 케이스에서만 발견되는 것이며, AI가 창궐하고 있는데도 감염된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은 긍정적이라고 하였다. 인체에 감염되는 AI가 보고된 것은 10년도 채 지나지 않았으며, 전세계의 관련분야 과학자들이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으므로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염되는 변종 바이러스가 출현하기 전에 대응책이 마련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AI 바이러스 변종이 아니더라도 인류는 바이러스성 인플루엔자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독감이 주기적으로 대유행을 하였던 지금까지의 경험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에 비하면 어느 정도 이미 그 정체가 드러난 AI 바이러스의 변종은 언제 나타날지도 모르는 신종 바이러스에 비하면 위험성이 적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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