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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사건과 매스컴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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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은 매스컴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매스컴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신문과 방송 등의 매스컴은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으나, 순기능과 함께 역기능도 가지고 있다. 대개의 사람들은 매스컴이 전하는 내용을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매스컴이 전하는 내용은 모두 사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매스컴이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게 되면 그 피해는 엄청나게 커지게 된다. 식품과 관련될 경우 잘못된 정보는 매스컴을 수용한 사람이 잘못된 선택과 행동을 하게 되어 건강상의 문제를 일으키고 최악의 경우 목숨까지 잃게 할 수도 있다.
매스컴은 끊임없이 자극적인 소식을 전달함으로써 일반 대중의 시선을 붙잡아 두려는 속성이 있다. 시청률 또는 구독률이 바로 광고수입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일반 대중이 식품 관련 보도에 과민반응을 보이는 과정에는 문제의 본질과 실질적 의미보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선정적인 보도에 몰두하는 매스컴의 자세가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다. 언론은 식품의 위해 문제를 제기하는 정보 제공자( 주로 수사기관, 시민단체, 국회의원 등 )로부터 정보를 받아 수요자인 독자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정보를 빠르게 전달할 지를 놓고 서로 경쟁을 벌이게 된다. 따라서, 속보성에 무게를 두고 정보 공급자의 주장을 여과 없이 보도함으로써 진실을 왜곡할 소지가 크다. 식품 문제를 대하는 매스컴의 자세는 과거에 발생하였던 식품사건들을 돌이켜 보면 잘 알 수 있다.
⊙ 우지사건 --- 일명 “우지사건(牛脂事件)”은 1989년 11월 검찰이 삼양식품, 삼립식품공업, 오뚜기식품, 서울하인즈 등 5개 업체의 대표자와 실무자를 구속, 입건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뒤 약 1개월 동안 매스컴의 집중 보도로 해당 업체에 심각한 피해를 준 후 점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갔으며, 사건 발생 7년 9개월 후인 1997년 8월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 동안 함께 기소되었던 지방의 한 중소기업은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으며, 삼양식품은 라면업계 1위 자리를 농심에게 넘겨주고 1997년의 외환위기를 맞아 결국 부도를 내고 말았다. 삼립식품공업 역시 그 여파로 부도를 내었으며, 서울하인즈의 경우 부도는 내지 않았으나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오뚜기식품만이 비교적 타격을 덜 받고 사건을 헤쳐나갔다.
사건 초기 검찰은 “비누나 윤활유를 만들 때 사용되는 공업용 우지를 사용하였다”고 발표하였고, 매스컴은 아무런 검증작업 없이 보도하였다. 심지어는 “비누를 끓여서 라면을 튀긴다”고까지 보도하였으며, 각 회사의 대표들이 수갑을 차고 구속되는 장면을 여과 없이 방영하기도 하였다. 그 당시 논쟁의 초점은 “미국에서 식용(edible)으로 분류하지 않은 우지(牛脂)를 우리나라에서 식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 하는 것과 “식품규격에 벗어난 원료를 정제하여 식품규격에 맞게 하였을 경우 원료로 사용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당시 수사를 맡았던 검사는 “걸레를 아무리 세탁하고 빨아도 걸레는 걸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으며, 모든 매스컴은 해당 업체를 비난하는 말을 쏟아내기에 바빴고, 냉정하게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려는 시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최초의 오해는 검찰이 발표한 “공업용”이란 용어에서 비롯되었다. 검찰은 식용(edible)이 아니므로 비식용이고, 비식용이므로 공업용이라는 논리였다. 이에 대하여 해당 업체 및 식품학자들은 미국에서 사용하는 “edible tallow(食用牛脂)”라는 용어는 별도의 처리 없이 바로 식용으로 할 수 있는 우지를 의미하고, 그 아래 등급의 우지도 가공하면 먹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으며 법원은 업체의 주장을 수용하였다. 사실, 식품회사에서 공업용 우지를 사용하는 것이 문제가 될 이유는 없다. 식품제조업도 엄연한 공업이며, “삼립식품공업”처럼 회사 이름에 “공업”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예는 매우 많다. 식품회사에서 사용하는 “식품공업용” 농수축산물 원료의 대부분은 그대로는 사용할 수 없으며, 적절한 가공 및 정제과정을 거쳐야만 사용할 수 있다.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것은 공업용이란 용어를 사용하면서 사실과 다른 “윤활유” 등을 언급하여 마치 식용으로 하면 유해한 석유화학 제품으로 오인하게 발표하고, 매스컴에서는 이를 확인하지도 않고 확대 재생산하였기 때문이다.
⊙ 통조림 포르말린 사건 --- 1998년 7월 검찰이 통조림제품에 포르말린을 넣은 혐의로 우리농산, 대진산업, 남일종합식품 등 3개 업체를 기소하면서 통조림 포르말린 사건이 시작되었다. 이 사건은 2000년 9월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내려졌으나, 이미 해당 3개 업체는 모두 부도가 난 후였으며, 이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여러 중소 통조림 업체들도 함께 부도가 났다. 약 10년 전의 우지사건과 틀린 점은 우지사건의 경우 해당 업체들이 대기업이었기 때문에 부도를 겪는 등 우여곡절은 있었으나 재기하고 있는데 비하여 이번 사건의 당사자들은 모두 중소기업이었기 때문에 재기하지 못하고 회사가 망했다는 것이다. 무죄 판결을 받은 후 각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경향신문에서 5천만원의 손해배상을 받아낸 것이 고작이었다. 당시 피해 업체의 한 여성은 “사장님 부인”에서 하루아침에 파출부로 전락하였고, 그 후에도 대형 할인점에서 고객도우미를 하며 생활하게 되었다.
포르말린(Formalin)은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Formaldehyde)를 37~40% 정도가 되도록 물로 희석한 것으로 살균 및 방부제로 사용되며, 2006년 최대 히트작인 영화 <괴물>에서 미군이 한강에 대량 방출하여 괴물이 탄생하게 되었다는 바로 그 물질이다. 당시 검찰은 술안주 등으로 애용되는 번데기, 골뱅이 등의 통조림제품에 시체의 부패 방지용으로 사용되는 포르말린을 첨가하였다고 발표하였으며, 매스컴은 이를 그대로 보도하여 사건으로 확대하였다. 애초부터 언론은 당사자들의 반론을 제대로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검찰의 수사결과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다른 자료들이 나왔는데도 거의 대부분 이를 무시했다. 세상의 눈과 귀를 잡아둘 좋은 소재거리가 생겼는데 이를 그냥 놓치기는 아까웠기 때문이라고 말하면 지나친 억측일까? 사람들이 즐겨 먹는 통조림에 인체에 치명적인 유해물질을 넣었다는 보도는 곧 엄청난 분노를 자아냈고, 관련자들에 대한 엄벌을 요구하는 여론까지 형성되었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검찰의 수사에 문제점이 있음이 곧 들어났다. 검찰이 업자들이 일부러 첨가하였다는 포르말린의 양은 자연상태의 식품에서도 발견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에 불과하였기 때문이다. 이 사건 역시 회사는 망했지만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채 잊혀져 갔으나, 매스컴의 받아쓰기 관행의 문제점을 반성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당시 공공기관이 발표한 내용은 무조건 공신력이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설사 오보가 된다 하더라도 면책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인지 매스컴이 너무 쉽게 받아쓴다는 지적이 있었으나, 그 후에도 이런 관행은 고쳐지지 않고 반복되고 있다.
⊙ 불량 만두 사건 --- 일명 “쓰레기 만두” 사건은 2004년 6월 6일 경찰이 “쓰레기로 버려지는 중국산 단무지 자투리를 수거해 폐우물의 물로 탈염, 세척해 전국 25개 유명 식품회사 등에 만두 재료로 납품해온 악덕업자 6명을 입건했다”고 발표하여 시작되었다. 경찰 브리핑에서 “쓰레기 만두”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되었으며, 당시 매스컴은 이 용어를 문제 업체의 만두에만 한정시켜 사용하지 않고 기사 제목에서부터 “쓰레기 만두”라 통칭하였고, TV에서는 경찰측이 제공한 화면을 별다른 확인작업 없이 보도하여, 단무지가 폐기 처분되는 화면이 마치 만두소(만두의 속재료)의 제조과정인 것처럼 잘못 인식시켰다.
매스컴은 연일 쓰레기 만두를 비난하는 기사를 내보내어 사건 1주일 만에 만두의 매출이 70% 이상 극감하였고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중소 제조업체와 시중의 일반 만두가게가 줄줄이 문을 닫게 하였다. 심지어 “비젼푸드”라는 중소업체 사장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한강에 투신하여 자살하기도 하였다. 당시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약 75%가 “매우 불쾌하고 충격적”이라 답하였으며, 인터넷에서는 “감옥에 가두고 죽을 때까지 그 만두를 먹여라”, “먹을 것을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은 사형을 시켜야 한다” 등 분노하는 글들이 올랐다. 이런 여론에 몰려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는 6월 10일 사건 관련 28개 업체의 명단을 공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앞의 여론조사의 다른 항목을 보면 거센 반응과는 대조적으로 정작 불량만두 사건의 내용에 대하여 정확히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즉, “일부 식품업체가 단무지 자투리를 비위생적인 방법으로 만두소 재료에 사용했다”고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32.2%)보다 “일부 식품업체가 버려진 단무지 찌꺼기를 만두소 재료에 사용했다”는 대답(64.3%)이 두 배나 되었다. 이런 결과는 사건 초기에 매스컴이 취한 선정적인 보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었다. 사건이 진정 기미를 보인 후에 나타난 진실을 보면 식품에 문외한인 경찰 등의 섣부른 터트리기식 발표와 매스컴의 선정적인 보도가 얼마나 일반 소비자의 판단을 그르치게 할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발표하였던 28개 업체 중에서 14개 업체는 최종적으로 무혐의 판정을 받았으며, 사건의 단초를 제공한 으뜸식품을 제외한 나머지 업체도 사실상 무혐의나 다름없는 시정명령이나 행정지도조치에 그쳤다. 이 정도라면 만두소를 제조한 으뜸식품에 대하여 행정처분을 하고, 그 만두소를 사용한 제조업체에 대하여는 해당 만두를 수거하도록 지시하는 수준에서 끝났을 사소한 문제였다. 식약청의 청장도 “여론에 떠밀려 조사를 서둘러 발표한 측면이 있다”고 밝혀, 발표 과정에서 일부 업체가 억울하게 피해를 입었음을 시인했다. 불량만두 사건은 매스컴에 의해 과대 포장된 내용이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고, 인터넷의 파급 효과에 의해 강력한 힘을 발휘한 여론이 정부의 부적한 조치가 취해지도록 하는 부작용을 나을 수도 있다는 것을 확인시켰다.
냉정하게 살펴보면 만두 제조업체들은 만두소 제조업체에서 제공한 제품을 원료로 사용한 죄밖에 없다. 그 만두소는 정부에서 위임 받은 전문기관에서 적합 판정을 한 시험성적서가 첨부된 정상적인 상품이었으니, 만두 제조업체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인 셈이다. 만두소를 제조한 으뜸식품 조차도 사회적 지탄을 받을 만큼 나쁜 짓을 하지는 않았다. 당초 경찰의 발표와는 달리 “쓰레기”를 원료로 사용하지도 않았으며, 식용으로 사용하기에는 위험한 물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문제가 된 단무지를 생산할 때 부산물로 나오는 자투리는 크기가 부적합하여 단무지로 사용되지 못할 뿐이지 식용으로 할 수 없는 쓰레기는 아니었다. 폐우물의 물을 사용한 것 역시 수질검사를 하지 않은 물을 식품제조에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식품위생법에 위배되는 것은 사실이나, 그 물에 대한 수질검사 결과는 식수 기준 46 항목 중 탁도(濁度)만이 1.28로 기준인 1.0을 약간 넘었을 뿐 미생물, 중금속 등 나머지 45개 항목은 모두 적합 판정을 받았다. 이 정도면 등산길에 식수로 사용하는 웬만한 약수터의 물보다 수질이 우수한 편이다.
위에서 예로 든 사건 외에도 1995년 10월 고름우유 사건, 1999년 11월 유전자변형 두부 사건 등 많은 사례가 있었으며, 최근에도 2005년 9월 고경화 의원이 밝힌 내용이 발단이 되어 중국과 무역마찰까지 불러 일으켰던 회충알 김치 사건, 2006년 3월 KBS의 “추적60분”이란 방송이 원인이 된 과자의 식품첨가물에 의한 알레르기 사건, 2006년 6월에 발생한 노로바이러스에 의한 집단식중독 사건, 2006년 10월 MBC의 “불만제로”란 방송이 원인이 된 화학조미료 자장면 사건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사건들이 있었으며, 현재와 같은 풍토가 개선되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발생하였던 수많은 식품사건들을 돌이켜 보면 정보의 사실 여부를 정확히 따져 원인과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진 사례가 한 번도 없다. 이런 점은 매스컴이 진실 규명보다는 시청률 또는 구독률에만 신경 쓰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아니면 말고”식으로 선정적으로 보도하여 태풍처럼 몰아치고 지나간 후 순식간에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지는 풍토 속에서 애꿎은 희생양만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제까지의 식품사건에서 희생양은 언제나 식품을 만드는 사람들이었다. 식품산업의 특성상 사건이 터지면 사건의 내용이 명확하게 규명되기도 전에 해당 업체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에 직면하게 되고, 정확한 내용을 일반인들이 인식할 때쯤엔 이미 그 업체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아 도산한 경우가 허다하다. 모든 여론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억울하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지도 못하고 부도덕한 인간으로 내몰려 귀중한 생명을 버리게까지 하였다. 그리고, 시일이 지나 그들의 잘못이 아니었음이 밝혀져도 그들이 겪은 혹독한 시련에 대한 보상도 없이 흐지부지 잊혀지고 말았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부분의 식품사건들은 정보 제공자의 한탕주의와 매스컴의 선정적 보도 태도가 결합하여 발생하였다. 식품사건의 정보 제공자들은 대부분 식품을 전공으로 한 사람들이 아니어서 식품이 갖는 전문성을 무시한 채 소영웅주의에 빠져 사회적 파장은 고려하지 않고 무책임한 발표를 일삼곤 하였다. 식품은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므로, 이런 발표를 접한 매스컴은 시선을 끌기 위하여 절제되지 않은 보도로 확대 재생산하여 지엽적이고 사소한 문제를 “사건(事件)”으로 키워 왔다. 단순한 해프닝에 불과한 내용도 특종기사로 취급하여 사회적 이슈로 만들어 왔으며, 이로 인하여 사건과 무관한 관련 식품업계 전반에까지 피해를 주곤 하였다. 여기에 오늘날에는 인터넷의 일상화로 인하여 정보의 확산 및 여론 형성이 예전보다 더욱 빠르게 진행된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매스컴 자체의 정화 노력도 있어야 하지만 일반 소비자들도 매스컴의 감각적 자극에서 벗어나 사실의 실체를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이를 위하여는 식품 관련 대형 뉴스를 접하였을 때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말고 1주일쯤 사태의 진전을 지켜보는 냉정함을 보이는 것이 현명한 태도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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